
칼럼통신 [칼럼니스트] by 서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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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30일
불참해도 무방한 경조사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주변에 경조사가 발생하면 누구나 겪는 고충이 있다. 남의 경조사에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다가 자기가 치를 때쯤 되어서 동창회 등 모임에 나오거나, 느닷없이 친한 척 하면서 술 한잔하자는 이들의 경우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이 생긴다. 이름은 긴가민가하고 언제 어디서 인연이 닿았는지 기억도 전혀 나지 않는데 참석해 달라는 불편한 초대를 받았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결혼철인 봄이 되자 이같이 달갑지 않는 사례들을 놓고 불평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며칠 전 가까이 지내는 한 이웃도 이런 고충을 내게 털어놓으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중학 동창 중 한 사람이 자기 아들 결혼식을 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너무 몰염치하다는 것이다. 그 친구 경조사가 그 동안 네 번이나 있어서 자기는 꼬박꼬박 갔고, 특히 초상 치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봐주기도 했는데 지난 해 자기애 결혼식에는 오지도 않고 그 뒤로도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면 두말할 필요 없이 무시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마음속은 이미 그렇게 결정하면서도 괜히 찜찜하다는 것이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갔다. 빈총도 안 맞니만 못하더라고 처음부터 모르면 몰라도, 알고도 모른 체 하려면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못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문서당에서 들었던 예상왕래(禮尙往來)라는 말을 들어 그런 경우 가지 않아도 될 근거로 제시했다. 사서오경의 하나인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예는 가고 오는 것을 숭상한다(최우선으로 삼는다). (내가)갔는데 (상대가)오지 않으면 예가 아니고, (상대가)왔는데 (내가)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禮尙往來. 往而不來, 非禮也. 來而不往, 亦非禮也.)라는 말이 나온다. 선생님은 이 말이 다양한 뜻과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서 경조사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고 했다.
즉 남의 경조사에 내가 갔는데(또는 뜻을 표했는데), 다음에 그가 오지 않는 것이나, 거기서는 왔는데 내가 가지 않는 것은 더불어 상종할 수 없는 실례로 취급했다. 부조금(또는 물품)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고받는 액수를 같게 했다고 한다. 철저히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었다. 요즘의 give and take 정신이 그때도 철저했던 셈이다.
내 집 경조사에 오지 않았던 상대가 일을 치르게 되었을 때는 설령 알아도 가지 않았다. '당신이 오지 않았는데 나는 왜 가야 해' 하는 식의 좁은 속이나 야박한 인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상대가 어떤 연유로 오지 못했는지 몰라도 그 이후 내게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이쪽에서 참석하면 그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므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간 아전인수격 풀이 같지만 그래도 그 완곡한 면이 그럴 듯 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미안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적게 주고, 많이 받자는 장삿속 철면피들까지 횡행하는 세상이니 굳이 그렇게 이유를 에둘러 대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내키지 않는 경조사에 불참할 때 찜찜한 마음을 달래는 근거로 '예상왕래'는 충분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조상 대대로 한 마을에 살던 시절에 적용되던 경조사 기준이 오늘날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지금이야 사는 동네, 회사 등이 자주 바뀌니 '준 만큼 받거나, 받은 만큼 주는' 예전의 '예상왕래'를 그대로 실현할 수 없다.
물가변동속도가 빠르니 받은 만큼 보내거나 보낸 만큼 받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들이 다른 지역은 물론 외국으로 이사 가는 일이 잦고 활동범위가 넓어 경조사 발생 자체를 알리는 것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더라도 그 정신만은 그대로 이어져 오기 때문에 경조사 불참 여부를 판가름해주는 이른바 가이드라인으로서 상당한 참고가 될 것이다.
-행정공제회 '웹진' 4월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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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29일
우주시대
홍순훈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hsh 지난(2008년) 4월 중순에 한국 여성 1명이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러시아에 260억원 지불?)을 다녀왔다.
A> 중국은 1992년에 러시아와 소유즈 우주선의 개발 기술을 전수받는 협약을 체결했다. 1999년 11월 창정(長征) 2호 로켓을 이용해 무인우주선 선저우(神舟) 1호를 발사, 회수하는 데 성공하고 2002년까지 3차례 더 시험 발사한다. 이어서 2003년 10월에 선저우 5호로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다. 현재 그들은 창어(姮娥 :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란 이름의 우주선을 제작해 2020년까지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는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B> 일본은 지난 3월 중순에 일본 최초의 우주실험동 ‘키보’(일본어로 희망)를 승무원 7인과 함께 미국 소유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에 실어 ISS(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ISS건설프로젝트는 1998년 미국 워싱턴에서 미항공우주국(NASA), 유럽우주국(ESA) 산하 11개국과 러시아, 캐나다, 브라질 등 16개국이 관련 협정에 서명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2010년까지 건설을 마무리할 예정인 ISS는, 무게 460t, 길이 108m, 폭 74m나 되는 거대한 우주 구조물이다. 이번 일본이 보낸 ‘키보’는 이 구조물의 일부로 장착하는 것인데, 무게 4.2t, 길이 3.9m, 직경 4.4m의 원통형 모듈이다. 5월 말경에는 이보다 3배 정도 더 큰 모듈을 ISS에 실어다 붙일 계획이라 한다.
C> 북한은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1998년에 ‘광명성 1호’란 인공위성을 대포동 1호(사정거리 2000km)에 실어 발사했다고, 2005년 2월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사정거리 6000km인 대포동 2호에 ‘로켓 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 고 말했었다. 미사일에 로켓 엔진을 붙인다는 것은 우주선의 운반체를 만든다는 뜻인데, 2005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우주 개발에 관한 어떤 보도도 없다.
D> 한국 전남고흥군에 3125억원을 들여 약 500만제곱m의 나로우주센터를 작년에 완공했다. 금년 12월에 그 곳에서 ‘한국형’ 우주로켓 ‘KSLV-1'을 발사할 것이라 한다. ‘한국형’이란 러시아에서 2000여억원을 주고 1단 액체 로켓을 사 오고, 그 위에 한국이 개발한 2단 고체 로켓을 올려 놓는 것이다. 러시아와 맺은 ‘기술보호협정’으로 말미암아 1단 액체 로켓에 대한 어떤 기술 이전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우주사업단장의 말이라며, 다음 글이 최근 어느 잡지에 실렸었다. “러시아에서 들여온 발사용 로켓은 우주로 사라진다. 그러나 GTV(실제 로켓과 같지만 우주로 쏘는 대신 지상에 묶어 놓고 연소 실험을 하는 로켓)는 남는다. 우리 연구진은 이를 해체해 부품 하나하나를 국산화한다. 일단 1단 로켓을 국산화하면, 이 로켓 4개를 붙여 2017년 1.5t급 실용위성을 실은 ‘KSLV-2호'를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기술 도둑질로 중국과 같이 2020년까지 달 탐사를 하겠다고 정부 차관이 읊으니......
E> 미국은 한국에 '사정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 이내의 미사일만 개발해야 된다'는 지침을 2001년에 내렸다. 이 내용이 ‘한미미사일협정’인데, 여기에 ‘인공위성용 로켓의 경우엔 사거리 규제 없이 발사한다’고 규정하고, 단서를 한국 기술로는 땅띔도 못하고 있는 ‘액체 연료 방식으로만 만든 로켓’이라 못박았다. 이러면서 MB통을 4월(2008년) 미국에 불러놓고 2조3천억원어치의 F-15K전투기 21대(1대는 덤으로 끼워 준 것이라 함)와, 여기에 장착할 사정거리 400여km의 미사일 수백기(구매가 미상)를 한국에 팔아먹고 있다. 의식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언론 보도의 표현대로 하면, 미사일 사정거리 400km가 아니고 400<여>km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거리가 360km이니 ‘한미미사일협정’의 제한 사정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반도에서만 가지고 놀면 불똥이 딴 곳까지 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선심쓰듯 팔아먹었다.....
한반도는 자동차로 하룻길밖에 되지 않는 좁은 지역이다. 이 좁은 지역이 양분돼 으르릉거리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는데, 그 잘못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우주시대로의 진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남들은 청동기시대를 사는데, 우리는 석기시대에 놀고 있는 꼴이다.
-200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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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 우주시대, 우주경쟁, 일본우주계획, 중국우주계획, 창어, 키보, KSLV-1, 광명성, F-15K전투기, 소유즈, 러시아로켓, 액체연료, 나로우주센터, 부시, 미사일, 사정거리
2008년 04월 26일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26일 1423호
전문가들의 권유대로 비밀번호는 유추하기 어려운 숫자나 단어로 바꾸고, PC의 보안프로그램을 부지런히 업데이트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와대마저 해커들의 ‘놀이터’가 된 대한민국
2008년 04월 26일
서귀포의 향기로운 흙냄새, 나무냄새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서울 북한산을 다니면서 혹시라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마련한 새 등산화를 신고 며칠 전 서귀포 해안선을 따라 들길을 걸었다. 올레코스라고 개발되기 시작한,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길이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지으러 다니는 길이거나 소나 말이 다니는 그런 곳으로 육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이다. 길이 없어 길을 낸 곳도 있다. 자연 속에서 풀과 흙으로 겹겹이 쌓인 최고의 카펫 길을 걸으니 등산화로 무장한 내 발이 쑥 하고 내려간다.
아주 푹신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흙을 밟으며 이렇게 편안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다. 어떤 카페트가 이보다 더 푹신할 수 있을까? 아마 이 길은 현지 청년들이 낫으로 풀을 베고 돌맹이를 골라 올레걷기 하려고 비행기타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낸 새 길 일지도 모르겠다. 풀 벤 자국이 있고 베어진 풀들이 누워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북한산 등산로와 다르다. 북한산 등산로는 사람의 발길로 반질반질해진 곳이 많고 아스팔트처럼 딱딱하기 까지 하다.
사실 서울의 북한산은 거기까지 닿기도 전에 죄송함을 느낀다. 지하철 어느 역에는 토요일인지 일요일 인지 아침시간에 북한산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니 피해달라는 광고까지 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는 등산용 지팡이가 다른 승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방송을 들어야 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두 줄 타기를 하라, 왼쪽으로 걸어야 문화시민이라는 둥 정말 내 돈 내고 타면서 이런 저런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사람들이 오른쪽에 서고 바쁜 사람들은 왼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이들은 규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런던 지하철에서는 이렇게 해도 아무 말 안하는데 서울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사람을 마치 범죄자 취급이다. 규칙을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거기에 안 따르면 잘못됐다는 식이다.
서귀포 들을 걸으면 이런 간섭을 듣지 않아도 된다. 머리 나쁜 사람들이 위에 앉아 규칙을 만들어 놓고 바꾸며 이랬다저랬다 하며 일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으로부터 자유롭다. 서귀포의 산과 들에서는 풀과 꽃, 나무와 흙에서 나는 향기를 맡기만 하면 된다. 제주도는 육지에서 집안 화분에 키우는 소철을 가로수로 심는 아열대지방같은, 한국 같지 않은 이국적인 섬이기는 하지만 특히 산과 들에서 나는 향기가 값비싼 향수 보다 더 좋다.
한가지 꽃에서 난다기 보다는 풀 나무 흙이 모두 어우러져 나는 향기이다. 길이 구부러지면 달콤한 향기가 나다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또 다른 냄새가 난다. 백리향 아니냐 민트향 아니냐 하면서 같이 걷는 사람들끼리 코로 냄새를 들이키며 무식한 대화를 나눈다. 확실한 것은 서울의 산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 서울의 근교 산에서는 지금 나지 않는 향기이다.
차가 주인이 되어버린 서울, 길을 건널 때도 차 속 운전자의 눈치를 봐야하고 마치 보행자는 운전자가 운전하는데 장애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곳. 큰 차를 가지지 않으면 호텔에서 사람 대접 못 받고 백화점에 갈 때 곱게 화장을 하고 가지 않으면 손님대접도 못 받는 그런 곳 서울. 그러나 서귀포에 난 올레 길은 차가 다닐 수 가 없는 오솔길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사람이 주인이다. 차가 나를 방해하지 않는 산과 들에서 해안선을 보고 걸으며 푹신한 흙을 밟고 나무의 향을 맡으며 계곡에 다다른다. 유채줄기로 만든 아욱국 비슷한 된장국을 먹고 부드러운 고사리나물, 하얀 살이 입에서 녹는 고등어구이를 반찬으로 하는 생활, 그 하루 동안 나는 아무 부러운 것이 없었다. 너무 행복했다.
-20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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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22일
일상의 참맛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우연한 기회에 어느 시각장애인과 한밤의 포장마차에 들른 적이 있다. 그는 지하철 객실을 오가며 승객들 적선에 의지해 사는데 그날 막차에서 같이 내렸다. 그에게는 하루 일과 끝인 이른바 퇴근길이었다. 집의 방향이 같아 함께 가다 소주나 한 잔 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 중에 다른 시각장애인이 화제에 올랐다. 우리 집사람한테 전해들은 그 시각장애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 성당을 순회하며 비장애인인 일반신자들에게 보람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제시했다.
그런 그도 딱 한가지 아쉬움과 소망이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자기 아이들 얼굴을 단 한 순간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살아 생전에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저승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비장애인들로서는 너무 사소한 그의 꿈에 장내는 눈물 바다가 되었다.
"나도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에 비하면 좀 더 행복한 편이네요" 그는 나면서부터 보지 못한 게 아니라 6,7살 무렵 시력을 잃었다. 그 역시 아이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 설명에 따라 나름대로 윤곽을 잡는다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제대로 볼 수 있던 예전의 사물에 대한 인상과 기억을 바탕으로 상상과 짐작을 조합한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 아니냐며 씩 웃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대신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당시 나는 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에 상사의 눈밖에 나서 진급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다. 이후 상당히 복구는 되었지만 그 여파가 길어 생활 구석구석이 우울하게 젖어 있었다.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말로는 나를 동정하지만 속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부 선후배 동료들의 눈치였다. 그걸 감당하는 데 날마다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되니 가정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월급쟁이가 직장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이나 능력, 경제력 등을 고려할 때 엄두가 나지 않고, 과감하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내 성격 또한 주요 원인이었다. 어느 회사나 이런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교활하고 악랄하게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상사가 있는 법인데 내 경우도 그랬다.
그 시각장애인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도중에 자연히 그들의 행복과 내 불행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심정과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고마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청각과 시각을 잃고 말하는 기능마저 마비된 헬렌 켈러는 그녀의 글 '3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에서 "나는 종종 모든 사람들이 이제 막 성인으로서 살아가려 할 때, 단 며칠 동안만 눈이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면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암흑은 그로 하여금 볼 수 있다는 것을 더욱 감사하게끔 만들어 줄 것이고, 정적은 들을 수 있는 기쁨을 가르쳐 줄 것이다."라고 했다.
직장내 어려움만을 전부로 생각하며 헬렌 켈러의 말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그날 밤에야 다시 떠올린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이고 명문이라는 그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내일이면 눈이 멀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하도록 하라. 내일이면 귀가 멀지도 모른다는 듯이 음악을 감상하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를 음미하도록 하라. 내일이면 촉각이 없어져 버릴 듯이 조심스럽게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라. 내일이면 이제 다시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들의 향기를 맡아보고 온갖 음식의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보도록 하라." 그렇게 모 감각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면 자연이 제공한 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기쁨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지금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무미건조해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고, 초라하다고까지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불투명한 미래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날 밤 이전의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내가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그건 성인이나 도달할 경지이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그때뿐이기 쉽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말처럼 모든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맛보려고 틈틈이 노력은 한다.
최소한 그걸 곱씹고 노력하는 동안만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그러려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하겠지만 이미 주어진 감각들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진정으로 감사할 줄은 모른다.
감사할 줄만 안다면 일상이 지루하거나 무의미할 이유가 없다. 즉 인생의 참 맛을 음미하고 즐길 방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혹시 나를 종교인으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약간 떨어져서 내 삶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비교적 자주 하는 편일 뿐이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서 몰두하다 보면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그럴 때 바둑판 앞에서 일어나 내려다보거나, 자리를 잠시 떠났다 와서 보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자기의 우세한 부분과 취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일상이 너무 가누기 힘들고 어려울 때 잠시 비껴 서서 보라. 그리고 헬렌 켈러 말대로 이미 내게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 아름다움과 기쁨, 인생의 활력소를 재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얼마 뒤 출근길 지하철에서 승객들 적선을 바라며 카세트 음악을 틀고 지나가는 그 시각장애인을 다시 만났다. 나는 그가 말했던 '좀 더 행복한 편'을 생각하며 미소를 보냈다. 물론 그가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리고 약간 비껴 서서 다른 시각으로 내 일상을 보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2008.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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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19일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19일 1420호
웬만한 회사에서는 ERP(전자적자원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사내 컴퓨터는 얼마든지 감시할 수 있다. 자신이 직장 책상 위에 놓여있는 컴퓨터로 게임이나 e-메일보내기 등 개인적인 일을 보다가 즉시 ‘중지명령’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야 회사니까 그렇다고 이해를 할 수 있다.
만약에 가정에서 게임이나 채팅을 하던 중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놀라게 될까. 나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채팅을 하지 마시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 누구라도 소스라치고 말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내 자신이 발가벗겨진 채 남들에게 노출돼있는 것이나 다름없... 내 PC를 누가 훔쳐보고 있다면?
2008년 04월 12일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12일 1419호
대기업 문화재단과 대학교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국악자료 기증을 제의했지만 거절하고 대전시에 '희사(喜捨)'했다. 유명 사찰을 떠돌며 불교 의식음악인 범패(梵唄)를 지도했던 연정 선생은 '기부(寄附)'가 아니라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따른 '희사'임을 강조했다. 불교에서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의 미혹됨을 없애주는 '네 가지 덕목(四德)'을 자(慈), 비(悲), 희(喜), 사(捨)라고 한다. 그 가운데 '희'와 '사'를 합친 '희사'는 '기쁜 마음으로 준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기부와 희사
2008년 04월 08일
'취(醉)하다'의 醉는 酉(유)와 卒(졸)을 합한 것이다. 酉는 '닭 유'라 해서 닭을 뜻한다. 그래서 乙酉(을유), 辛酉(신유)처럼 酉가 들어간 해를 닭의 해라 한다. 시간상으로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를 酉시라 했다.
그러나 본래는 술 담는 용기를 본 따 만든 글자다. 酉를 글자 아닌 그림으로 생각하고 들여다 보라. 술 동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이 때문에 한자에서 술이나 '취하다'의 뜻을 지닌 글자에는 대부분 酉가 들어간다. 酒(술 주)는 水(물 수.삼수변)와 酉가 합쳐진 글자이다. 술 동이에 든 액체가 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한자 깨나 아는 술꾼들이 해 질 무렵인 酉시를 '술'시라며 반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卒은 끝을 뜻한다. 따라서 醉는 '술을 끝까지 마신다'라는 말이다. 술을 끝까지 마시면 취하지 않고 배겨낼 장사 없다..
영어에서는 '취하다'를 보통 get drunk라 하지만 일반적 의미로는 intoxicate를 쓴다. 가운데 -tox-가 poison(독)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마약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보다는 술에 취하는 것이 더 운치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취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날마다 발 딛고 있는 이 고단한 삶의 수렁을 잠깐 벗어나는 그 기분 말이다. 이른바 자기를 잊는 몰아의 경지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거나, 자기도 몰랐던 열정과 감성을 감지할 것이다. 그때 발산되는 에너지가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까지 의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분출하기도 한다.
가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면서도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을 술자리에서 만나면 오가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술도 못하는 사람의 글이나 음악, 미술에 무슨 감동이 있고, 무슨 진실이 있겠느냐"면서 농담을 하는데 어찌 생각하면 그게 전혀 농담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취하다'라는 말은 이처럼 술과 관련이 있지만 '심취하다' '도취하다'라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술은 아니지만 술만큼 강렬한 마력을 지닌 것에 취했다는 뜻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 모차르트에 심취했다' '우리는 그날 승리감에 도취했다' 하면 술 대신 음악과 승리에 취한 것이다.
봄에 취하는 것도 그렇다. 봄만이 가진 마력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같은 음악, 같은 그림을 대해도 취하는 계기와 매력의 핵심이 다르듯 봄도 사람에 따라 취흥을 돋구는 부분이 다 다르다.
나는 군복무 시절 보초를 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진달래의 붉은 색에 지독하게 취한 적이 있었다. 최전방이라서 남북의 산이 다 시야에 들어오는데 북상하는 봄과 진달래는 남북 구별 없이 산과 들에 지천으로 번졌다. 거기에서 총부리를 서로 겨누어야 하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것이다.
진달래가 산에 아무리 만발해도 웬만큼 가까이 가지 않아서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인데 계속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거뭇거뭇한 산그늘 속에서 분홍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산은 이만큼, 저 산은 저만큼 봄의 색채가 드러났다. 하도 강렬하게 응시하니 봄 아닌 내 눈빛 때문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날마다 눈빛으로 진달래꽃을 피우느라 보초서는 지루함과 괴로움을 잊고 있다" 했더니 술을 못 마셔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라는 농담 투의 답장이 왔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취했다. 술이 없어도...
올해도 봄이 왔다. 취흥을 돋구는 봄의 매력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꽃 그늘 진 한가한 골목길, 보리밭을 스쳐오는 바람 물결, 섬과 섬 사이를 돌아서 바다를 건너오는 봄 내음 등이 사람을 취하게 한다. 이럴 때는 감때사나운 개들도 만취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한밤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 해질 무렵 바닷가 외딴 집 마루에 찾아든 나른한 햇살, 먼 산아래 봄 오는 마을, 개나리 밑의 암탉과 병아리들 등도 우리를 한없이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봄을 맛보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이 되었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이미 없어져 버렸거나, 있더라도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봄은 머물러 있다.
먹거리에 자연산은 드물고 양식이 판치는 것처럼, 봄도 자연산은 사라지거나 희귀해져 참된 봄을 구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백화점 광고나 TV에 나오는 봄이 먼저 인사를 하지만, 아무리 그럴 듯 해도 인위적으로 가꾸고 꾸민 봄이 취흥을 제대로 돋굴 수는 없다.
예전에는 늘 가까이 있던 봄이 이렇게 멀어졌으니 참 맛을 보려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서 먼 곳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매우 아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바른조달 봄호(2008)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2008년 04월 06일
[칼럼니스트] 2008년 4월 6일 1417호
정말 멋있는 사람은 단지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은근한 느낌이 지속된다. 또 알면 알수록 멋을 느끼게 해주는... 멋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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