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통신 [칼럼니스트] by 서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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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0일
1976년 4월 어느 날 밤 1시쯤 나는 동경의 한 호텔에서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넋을 잃은 듯 본 것은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었다. 밤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어서 그 동안 모든 것이 단절되는 나라 사람의 눈에는 일본의 한밤중 풍경은 충격이었다. 한편 분노가 치밀었다. [칼럼니스트] 2009년 11월 10일 1526호그 때 그 시절 해외여행
2009년 07월 28일
비, 소낙비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주막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갈 줄 모르랴 한잔 술을 모르랴
나병이라는 천형을 한 평생 안고 비운에 살다간 한하운 시인의 ‘비 오는 길’이란 시다. 비가 인생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데 이 시는 그 중에서도 휴식의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설농사가 보편화한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논밭에 나가 땡볕 속에서라도 그냥 일해야 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웬만한 여정은 마냥 걸어야 했다. 그러나 비가 오면 대부분 쉬고, 멈췄다.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리고, 갈 길이 멀기만 해 멈출 수 없을 때 비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누구 눈치를 보거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쉴 수 있는 좋은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은 고되고 먹을 것 시원치 않던 시절, 비 덕분에 잠깐 일손을 놓으면 동네에서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추렴해서 떡이나 해 먹자고 나서기도 했다. 말이 떡이지 쌀이 어디 있겠는가. 대신 차좁쌀을 얼마씩 거둬서 쑥떡을 만드는 게 보통이었는데 모여서 만들고 먹는 과정이 마냥 기쁘기만 한 이웃 간의 자그만 잔치였다. 남정네들도 휴식과 막걸리에 만취했다.
비 오는 날이 쉬는 시간이라면 주막은 쉬어가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 나그네는 이를 다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서둘러 가야 할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나그네인들 쉬어갈 줄 모르고, 한잔 술맛을 모를 리 있겠는가. 그렇지만 미련을 접고 서둘러 가야 한다. 이처럼 고단한 인생이 어디 그 나그네뿐이랴.
그런가 하면 구전에 바탕을 둔 가요 ‘열두냥짜리 인생’에서는 비 오는 날의 휴식을 매우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놀면은 놀고 싶어 노나 비 쏟아지는 날이 공치는 날이지 비 오는 날이면 님 보러 가고 달 밝은 밤이면 별 따러간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가다판의 근로자들에게 쉬는 것은 곧 굶는 것이다. 그래도 비가 오면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잔 하며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쉬면서 한 잔하는 것, 그게 과분함을 잘 알지만 하는 수 없이 하는 일이니 세상은 우리를 너무 비웃지 말라는 완곡한 항변이 들어 있다.
지금은 교통도 발달하고, 대부분 생업이 비가 와도 별 지장 없는 세상이라 비와 휴식의 상관관계는 많이 희박해졌지만 비가 오면 긴장의 끈을 좀 늦추고 싶다는 심리적 요소는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비가 오면 평소에 비해 손님이 3,4배 늘고 빈대떡과 파전 등 안주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우리 동네 빈대떡 집 주인 말이 이를 잘 입증해준다. 다른 술이나 안주도 많은데 유독 소주와 빈대떡을 많이 찾으며 힘겨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비가 긴 시간, 차분히 내리는 데 비해 소낙비는 짧은 시간에 강도 높게 쏟아진다. 보통 비보다 예측이 쉽지 않아 느닷없고,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휴식의 요소는 더욱 강하다. 갑자기 퍼붓는 비를 피하지 않고 밖에서 하던 일이나 행동을 계속 할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 받고 계속 걷거나, 어느 건물 곁에서 잠깐 피하면서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쌓였던 마음속의 먼지와 소음이 씻겨나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자신을 돌아볼 말미를 주는 것이다. 우산 속에서 오랜만에 자신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거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소중한 틈새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마당과 조그만 화단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비 그친 뒤 올라오는 향긋한 흙냄새와 풀향기가 여름 더위마저 잊게 해주고, 맑게 갠 하늘과 깨끗이 얼굴을 씻고 난 초목들은 생기가 돈다. 일상에 찌든 심신에 짜릿한 반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김유정의 ‘소낙비’나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런 점을 잘 포착한 소설이다. ‘소낙비’에서 노름판 밑천 돈을 가져오라는 남편 성화에 시달리며 날마다 매타작을 당하는 춘호 아내가 그 돈을 위해 동네 부자 이주사에게 몸을 내주는 순간이 소낙비 오는 동안이고, ‘소나기’에서 소년이 윤초시 증손녀와 원두막으로 간 것도 소나기 때문이었다.
야구 등 각종 경기에서도 갑자기 비가 내려 게임을 일시 중단했다 재개하면, 공격과 수비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져 승패가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다. 관점과 처지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전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경제 전망, 미래 예측 등 일부분야에서는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것을 맑음에 비해 부정적으로만 사용한다. 물론 가시거리 확보 등 거리 개념에 중점을 둔 말의 의미가 확대된 것이지만, 지나치게 일방통행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음과 흐림의 적절한 조화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우리는 항시 이를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 가는 길이다.
-‘바른 조달’(2009 여름호)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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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02일
첫째, ‘하찮은 사람의 하찮은 말이라도 열심히 들으라. 그러면 당신의 삶은 많은 면에서 풍부해질 것이다’인데 막상 해보려니 보통 고역이 아니다. 관계가 ‘하찮은’ 사람의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한없이 듣자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인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런 경우를 겪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2009년 7월 2일 1511호 상대방 말 열심히 듣기
2009년 05월 13일
남녀가 사랑을 나누느라 보리밭에 들어가 남의 농사 망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게 됐다. 그런 일을 이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하긴 농촌에 풋사랑을 속삭일 젊은이들이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이고, 또한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은 널린 게 모텔이니 보리 키가 예전처럼 크더라도 그런 용도는 이미 끝난 것이다. [칼럼니스트] 2009년 5월 13일 1507호 보리밭 유감
2009년 05월 07일
우리는 아직도 이름을 중시하는 경명사상(敬名思想)이 뿌리 깊어 맨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예전에는 호나 자가 이름을 대신했지만 지금은 그게 없는 대신 대체로 직업이나 직책을 붙인다. 김국장, 이장관, 최의원, 정사장 등 현직이 아니면 예전 직책이라도 불러야지 아무개씨라고 그냥 부르면 ‘내가 당신 집 머슴인 줄 아느냐’ 또는 ‘동네 줄주정뱅이도 그렇게는 부르지 않는다’는 등의 항의를 받게 마련이다. 그럴 때 호 같은 것이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칼럼니스트] 2009년 5월 7일 1505호호(號)는 좀 거시기하니 애칭 정도면... - 한문서당 이야기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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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8일
“1년 그것? 별로 쓸 것 없어. 한번 헐었다 하면 벌써 며칠이고, 눈 깜짝하면 한두 달 같은 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누가 이처럼 넋두리를 하면 대부분 금방 금방 떠오르는 말이 있을 것이다. “십 만원? 그거 별 거 아니지. 지갑 한번 열었다 하면 5,6만원 금방 달아나고 쓴 자국마저도 없으니...” [칼럼니스트] 2009년 4월 18일 1500호 벌써 봄
2009년 03월 15일
한문서당도 서울 집중인가 - 한문서당 이야기 05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한문서당 강좌를 듣다보면 가끔 이색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외국인들이다. 서양인들은 외모가 우리와 달라서 금방 알 수 있는데 왜 어려운 한자, 한문을 배우려 하느냐고 물으면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다 보니 한자, 한문이 한국말과 글의 이해 및 습득에 절대적임을 깨닫고 다른 도리가 없어 왔다고 한다.
가끔 일본인과 중국인도 같이 들을 때가 있다. 일본인들 역시 한국말과 글을 배우는데 한자를 모르고서는 효과가 더디기 때문이라 답한다. 중국인들은 간체자를 쓰기 때문에 번체자는 자기들에게도 거의 외국어나 마찬가지여서 따로 배운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들이 지방에서 들으러 오는 수강생들이다. 언젠가 ‘주역’반에 청주에서 오는 여성이 있어 물으니 그곳에서는 그 강의를 하는 곳이 없어 서울로 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오간다고 했다. 또 ‘장자’반에는 논산에서 KTX로 통학하는 장년남성이 있었는데 역시 같은 이유였다. 부여에서 오는 한 아주머니는 아예 1박2일 서울에 머물면서 필요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듣는다고 했다. 드문 경우지만 부산, 제주에서 비행기로 오가는 이도 있었다. 입시생처럼 절박한 것도 아닌데 그처럼 열정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서울처럼 서당이 있지도 않고 혹 있다 치더라도 과목이 기초 한자 습득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로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당 선생님들 말을 들으면 한학 스승들이 지방 곳곳에 계셔서 자신들도 가끔 간다는데 그건 그 분야 전문인들한테만 해당되는 것이고, 일반인들이 가서 배울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한문서당의 수요와 공급이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서당도 수도권 집중을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언젠가 서당을 오래 다니던 한 분이 아들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 가게 됐다. 70대 중반의 노인이신데 고향 부근으로 가시게 돼 잘 됐다며 축하하니 그게 아니라며 서운해 했다. 자기는 노후에 한문서당 다니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데 부산에는 그게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니 전문인을 위한 강좌는 있을지 몰라도 일반인을 위한 주역, 서경, 시경, 사기, 통감, 장자, 노자 등의 강의는 아직 찾지 못했다며 우울해 했다. 그때는 그 분의 말이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청주, 논산 등지에서 온 수강생들을 만나고 나서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9.03.14)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 - 한문서당 이야기 01 한문은 개판? - 한문서당 이야기 02 인터넷장애인 모임아 아니래도 - 한문서당 이야기 03 '천자문'에 대한 오해와 실제 - 한문서당 이야기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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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17일
‘천자문’에 대한 오해와 실제 - 한문서당 이야기 04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한문공부를 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요? ‘천자문(千字文)’도 배운 적이 없거든요.” 한문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천자문’도 모를 정도의 백지상태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뜻이다.
그런 이들에게 “천자문은 한문기초교재가 아니라 사실은 종합완결판이다. 천자문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등 사서삼경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철학에 두루 통해야 한다”라고 답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걸 읽으려고 한문을 배우려 하고, 그 시작을 ‘천자문’으로 잡는데 앞뒤가 바뀐 말을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반응은 무리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천자문’이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아동들은 지적수준이 처음부터 그렇게 높았는가, 아니면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일게 된다. 눈치 빠른 사람은 금방 후자임을 깨달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천자문의 맨 처음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은 천자문을 한 번 들춰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하고 서당 개도 읊을 줄 안다. 그러니 기초교재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를 풀이하는데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인데 ‘하늘이 검다’에서 누가 수긍할 것인가. 이는 ‘주역’ 64괘 중 ‘곤’괘 ‘문언전’에 나오는 말이라 ‘주역’을 모르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막 세상 사물에 눈을 뜨기 시작, 하늘은 파란 걸로 아는 어린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천자문 내용 거의가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일찍이 연암 박지원도 천자문의 이런 모순을 예로 들며 기초교재로서 부당함을 지적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보다 더 신랄하게 당시 교육실상을 비판했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지었다고 한다. 한 구에 넉자인 사언고시(四言古詩)로 총 250구(句),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거기에는 숱한 고사와 고전 내용이 녹아 있어 그걸 이해하기가 녹록치 않다.
그걸 기초교재라고 하니 무리가 없을 수 없다. 좀 과장하면 영어공부 하려는 어린이들한데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부터 가르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서당에서는 ‘천자문’을 기초과정에 넣고 있다. 현재로서는 달리 분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은 정말 기초부터 배우려는 사람들과 ‘주역’ ‘노자’등을 배우며 더불어 천자문을 읽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그것이 바로 ‘천자문’의 모순과 실상이다. (2009.02.17)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 - 한문서당 이야기 01 한문은 개판? - 한문서당 이야기 02 인터넷장애인 모임이 아니래도- 한문서당 이야기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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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14일
인터넷장애인 모임이 아니래도 - 한문서당 이야기 03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인터넷박약회라는 곳이 있다. 주로 성인 그것도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강좌를 개설하고 있는데 꼭 늙은이들만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컴맹고령자의 어려움을 해소해 준다는 소박한 취지로 당국의 지원을 받아서 실시하고 있지만 나이 관계없이 의욕만 있으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상당히 후지며, 내용도 그렇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수강생들은 그저 기초나 하는 줄로 알았다가 동영상 제작 등 고급단계까지 이르면서 내용이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고 놀란다. 또 강사 분들이 70안팎의 고령이라 어리둥절하다가 우리나라 IT분야에서 일찍부터 활약하신 분들이라는 점을 알면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이 강좌에 참가해야만 알 수 있다. 인터넷박약회라는 명칭만으로는 이런 내용들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관내 순찰을 돌던 경찰이 어느 날 이곳에 들렸다. 그리고 평소 늘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여기에 와서 인터넷을 배우는 이들은 어느 정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인가요? 박약이라고 한 걸 보면 상당히 중증인 것 같은 데...”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등 뜻을 같이 한 분들이 만든 박약회라는 모임이 있다. 고전과 전통문화를 통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실시하며, 사회와 국가가 나가야 할 건전한 방향을 제시하자는 것이 주된 취지이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는 해마다 사서삼경, 한시, 역사 등 강좌를 개설, 한문서당을 열고 국내외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펴고 있다. 모임의 이름은 논어의 ‘博學於文 約之以禮’(지식은 넓게 행동은 예의 바르게)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 박약회로 했다.
나아가 옛 것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컴퓨터 등 현재의 추세에도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뜻에서 인터넷박약회를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긴 과정을 그 경찰에게 설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인가.
그 동안 한자, 한문교육의 방치와 전통문화보존의 소홀 등이 빚은 여러 요소들 지적에서부터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한글로만 ‘인터넷박약회’라고 내걸었으니 논어를 별로 접하지 않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신박약’ 같은 용어부터 떠 올린 것이다. 그러니 그 경찰 뿐만 아니라 그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인터넷장애인 모임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9.01.31)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 - 한문서당 이야기 01 한문은 개판? - 한문서당 이야기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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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10일
한문은 개판? - 한문서당 이야기 02 박 연 호
爲文, 爲國, 爲詩의 爲는 다 같지만 뜻은 모두 다르다. 爲文은 ‘문장을 짓다’이고 爲國은 ‘나라를 다스리다’ 爲詩는 ‘詩經을 읽다’로 번역해야 한다. 같은 글자가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은 어느 문자에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자는 그게 매우 심하다.
한문에서 가장 번역하기 힘든 其, 將에 비하면 爲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其와 將은 쓰임에 따라 뜻이 40가지를 넘는다. 한문을 대하는 사람들이 한자의 이같은 다의성에 가장 많이 곤혹을 겪는다.
한문은 띄어쓰기가 아예 없어 이 또한 구두점을 어디 찍는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이 역시 한문 배우는 사람들을 헤매게 만든다. 가장 많이 드는 예가 不可不可이다. 不,可不可 하면 ‘可도, 不可도 없다’이고 不可,不可하면 ‘不可하다.不可하다’로 不可함을 강조하는 말이 되고 不可不,可하면 ‘不可不(하지 않을 수 없어)可라고 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세 경우의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또 한문은 단어의 성분이 제멋대로(?)다.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말장난 비슷하게 드는 예가 人人人人人 이다. ‘人(사람이면) 다 人(사람이냐) 人(사람이) 人(사람다워야) 人(사람이지)’ 식으로 풀이하는데 같은 人자가 주어, 서술어, 부사구 등 가지가지다.
위의 예들은 한문의 복잡성과 애매성을 지적하는 극히 일부분의 예에 불과하 다. 그러니 한문 독해력을 기른다는 것은 달동네를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 번지수가 일정한 순서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뛰고 마구 뒤엉킨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기분이다.
서당에서 툭하면 나오는 수강생들의 불평불만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선생님들은 그때마다 이런 점을 되풀이하면서 하나하나 극복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승 한 분이 “그러면 결국 한문은 개판이란 말이네요?” 하며 불쑥 내뱉었다. 순간 강의실이 뒤집어졌다. 도를 닦는 여승과 ‘개판’이란 비어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전혀 웃지도 않고 진지하기만 한 그녀의 표정이 더욱 배꼽을 쥐게 했다.
선생님도 정색에 가까운 표정으로 “전혀 개판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며 일단 수긍을 한 뒤, 그게 또한 한문의 묘미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학동’(?)들도 양측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달동네 길이 아무리 난마처럼 얽혀 있어도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해지듯 한문책 속 방황도 언젠가는 요령을 터득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지고...(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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